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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밭가에서 – 김수영

삶은 계란의 껍질이 벗겨지듯

묵은 사랑이 벗겨질 때

붉은 파밭의 푸른 새싹을 보아라

얻는다는 것은 곧 잃는 것이다

먼지 앉은 석경 너머로

너의 그림자가 움직이듯

묵은 사랑이 움직일 때

붉은 파밭의 푸른 새싹을 보아라

얻는다는 것은 곧 잃는 것이다

새벽에 준 조로의 물이

대낮이 지나도록

마르지 않고 젖어 있듯이

묵은 사랑이

뉘우치는 마음의 한복판에

젖어 있을 때

붉은 파밭의 푸른 새싹을 보아라

얻는다는 것은 곧 잃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