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번 여름 휴가 때 후지산을 올랐습니다.
야간에 올라서 일출 보고 분화구 한바퀴 돌고 왔는데요.
정말 만족스러운 휴가였습니다.
후지산에 올라가보자고 처음 생각했던 때는 작년 여름입니다.
어느 동호회의 누군가가 후지산 정상에 다녀왔다고 사진을 올린 것을 보고
'아아 후지산 정상에 올라갈 수도 있는거구나...' 하면서 신기해 했었어요.
후지산 정상에 올라간다는 건 상상도 못하고 있었는데 말이죠.
나도 기회가 되면 후지산 정상에 한번 올라보고 싶다 생각만 하고 그 뒤로 후지산에 대해서 잊고 지내다가...
이번 여름휴가 1달전부터 휴가지를 어디로 할까 하다가 후지산이 생각난겁니다.
바로 항공권 예약하고 1달동안 후지산등반에 대해서 검색하고 많은 글을 읽었습니다.
야간등반 요령이라던지, 필요한 준비물, 날씨에 대처하는 법이라던가, 카메라 취급... 등등
그리고 자켓, 산악런닝화, 헤드랜턴, 판쵸우의, 배낭등등 등반에 필요한 물품을 하나씩 구매했고,
휴가 2주전부터는 웨이트보다 유산소 위주로 운동 했어요.
후지산 등반을 결정하고 1달동안 후지산에 올랐다는 사람들의 블로그를 많이 찾아서 읽어봤는데요.
다들 너무 엄살을 떨어놓으셨더군요. 그래서 긴장 좀 했었습니다만...
힘들어 죽을뻔 했다느니... 다시는 오르기 싫다느니... 고산병이 어쩌고 저쩌고...
그런 줄 알고 올랐는데 저는 산을 좀 잘 타는 편이라서 전혀 힘들지 않게 올랐거든요.
마음 단단히 먹고 올라서 더 쉬웠는지도 모르겠지만요.
보통 올라가는데 5~6시간 걸리고, 내려오는데 3~4시간 걸렸다고 하더군요.
저는 올라가는데 4시간 20분 걸리고, 내려오는데 2시간 걸렸습니다. 쉬엄쉬엄...
올라가는 도중에 고산병 때문에 자리에 엎어져서 끙끙대는 사람들도 여럿 있었고,
산소통 붙잡고 쉬는 사람들도 있었고, 도중에 포기하고 내려가는 사람들도 있긴 했습니다.
근데 결론은 청계산 오르는 것보다 쉬웠고, 소백산 비로봉 오르는 것보다 훨씬 쉬웠어요.
후지산은 해발 3776미터의 매우 높은 만년설이 있는 산입니다.
그래서 일반인에게는 년중 7~8월 2달간만 개방을 합니다.
그 외의 기간에는 오르고 싶어도 오를 수가 없어요.
혹시 올라가실 분 있으시면 일단 내년까지는 기다려야겠지요.
후지산은 날씨가 아주 변덕스러워서 하늘에 별이 반짝반짝하다가도 갑자기 비를 뿌리기도 하고
바람이 너무 쎄서 비바람 때문에 산행을 포기하고 근처 산장에서 날씨가 좋아지길 기다렸다가 다시 오르고 그런답니다.
제가 후지산을 오르기로 한날 도쿄는 종일 비가 왔어요.
인터넷으로 일기예보를 보니 다음날까지는 날이 개일 것같지 않아서 등반을 다음날로 미룰까도 생각했습니다만
비가 오면 오는대로 그냥 오르자는 생각으로 신주쿠에서 후지산고고메까지 가는 고속버스표를 예약했습니다.
신주쿠에서 출발은 19시 50분이었습니다.
신주쿠고속버스터미널에 일찌감치 가서 예약한 버스표를 구매하고
근처에서 저녁을 때우고 편의점 들러 후지산에서 먹을 도시락 1개와 물 500ml, 포카리스웨트 1L를 구매했습니다.
화장지도 사고 등반 중간에 칼로리 보충을 위한 스니커즈도 몇개 샀어요.
신주쿠에서 버스를 타고 후지산고고메까지 가는데 비가 계속 내리더군요. 천둥번개와 함께...
정말 불안불안 했는데 후지산고고메에 도착하니까 다행히도 비가 딱 그치더군요.
후지산은 높이에 따라서 10개 지점으로 나눠놓았는데 보통 5번째 높이의 지점인 고고메에서 산행이 시작됩니다.
고고메의 높이는 2400여미터입니다. 여기서 1300여미터를 올라가는 것이지요.
그렇다고 해서 해발 1300미터의 산을 오르는 것과 비교해서는 안되요.
높은 고도 때문에 산소가 부족해서 더 힘이 들고 올라가는 속도가 느립니다.
한여름인데도 고고메도 높긴 높았는지 쌀쌀하더군요. 반팔에 긴팔을 껴입었으니까요.
출발지에는 가게가 많은데 고고메에 도착한 시간이 22시의 늦은 시간이라서 문을 연 곳은 한군데 밖에 없었어요.
남들은 지팡이와 산소캔을 꼭 구매하라고 했는데 저는 산소캔은 생략하고 지팡이만 구매했습니다.
지팡이는 산행에 매우 도움이 됩니다. 그냥 나무막대기일 뿐인데 1000엔! 너무 비싸지만 필수구매아이템입니다.
제가 올랐던 날은 평일이라 그런지 사람이 별로 없었습니다.
후지산에 오르는 사람들이 많으니까 랜턴이 없어도 사람들 따라 오르면 훤하게 잘 오르겠지 생각했습니다만
로쿠고메까지 올라가는 동안 컴컴한 산길을 혼자서 갔습니다.
야간산행에서 랜턴 필수입니다. 중간중간에 매우 험한 바위길이 있는데 안보이면 절대 못 오릅니다.
산에 오르는 동안 하늘에는 별이 반짝이는데 발 아래 구름에서는 천둥번개가 치더군요.
높은 산을 오르니 희한한 장면을 다 보게 되네요.
가끔 비가 부슬부슬 오기는 했지만 판쵸우의는 딱 한번 입었다가 조금 후에 벗었을 정도로 날씨는 나쁘지 않았습니다.
오르는 동안 영국에서 왔다는 탐을 만났고, 탐의 수다를 들어주다가 헤어지고 먼저 정상에 올랐는데
나중에 탐이 정상에 올라오길래 아는 척해서 후지산정상에서 몇시간동안 탐과 함께 돌아다녔습니다.
탐은 일본의 4개섬을 모두 돌아다녔고, 후지산의 일출이 너무 좋아서 그날의 야간등반은 2번째라고 하더군요.
일본어가 매우 유창했습니다.
지난주에는 부산에 갔었다고 하는데 너무 더웠답니다.
한국어는 하나도 모릅니다.
후지산의 정상은 많이 춥습니다.
정상에 올랐더니 사람들이 다들 겉옷에 우의까지 입고 부들부들 떨길래 뭐가 그렇게 추운가 했는데,
가만히 3분 정도 있으니 정말 으슬으슬 추워지더군요.
저도 바로 자켓 입고 판쵸위의까지 덮어썼어요.
후지산의 일출은 조금 아쉬웠습니다. 해가 뜨는 딱 그 지점에 구름이 있었어요.
그래도 운해위로 솟아오르는 해를 보는 기분은 정말 좋더군요.
해가 오르고 날이 밝아지니 구름없는 하늘에서 햇빛이 바로 내리쬐더군요.
햇빛에 기습당한 기분으로 허겁지겁 선크림 쳐바르고 입고 있던 옷을 벗어 제꼈습니다.
후지산 정상의 분화구는 엄청 웅장했습니다.
감탄사를 내질러야 하는데 탐이 옆에 있으니 나도 모르게 일본어로 감탄사가...
쓰게~~~ -_-;;
후지산 오르는 동안 한국말을 한번도 못 들었어요. 하산길 중간쯤에서 한국사람들을 처음 만날 때까지...
탐과 후지산 분화구를 한바퀴 돌아보고 3776미터의 기념비에서 서로 사진 찍어주고 내려왔습니다.
내려오는 동안 밤에는 볼 수 없었던 산의 풍경을 구경하면서 사진을 찍었습니다.
산 중간중간에 걸린 구름을 지나가기도 하고, 경사 35도이상의 산을 오르내리는 사람들을 봤습니다.
낮에 올랐으면 정말 재미없고 힘만 들었을 정도로 나무 한 그루 없는 후지산입니다.
후지산고고메에 도착해서 전날 편의점에서 샀던 도시락을 까먹고 12시에 출발하는 신주쿠행 버스를 탈 때까지 땅바닥에 엎어져서 잠을 잤어요.
끝. 사진은 곧 올라옴.
혹시 제 글을 읽으신 분들 중 후지산 등반을 준비하시는데 궁금하신게 있으면 리플 달아주세요.
아마 이 글을 읽으시는 분들에게 이 글은 1년전 혹은 2년전의 글일 수도 있겠지만...

